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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비움 12025-03-18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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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비움'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비움을 두려워한다. 지금까지 노력한 모든 결과를 버려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당장 집도 절도 없이 생활해야 하고, 경제적인 모든 것까지도 비워야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비움의 의미를 오해한 나머지 수행의 근본적 조건마저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길에서의 비움은 그런 비움이 아니다. 마음을 비우는 것이다.

성직자가 아닌 속세의 수행자로서 모든 것을 비울 수는 없다. 나 자신은 물론 가족의 건강을 유지하고 의식주를 해결해야 하는 등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스스로 구해야 한다. 누구도 도움을 주지 않는다. 성직자나 종교인은 생활의 모든 것을 제공 받지만 속세의 수행자는 전혀 상황이 다르다.

일반인의 경우 생활에서 부딪치는 과제가 많은 만큼 수행에서도 성직자 보다 훨씬 더 강도 높은 시험이 계속 올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속세의 수행자가 성직자보다 더 수준 높은 깨달음에 도달할 가능성은 사실 더 많이 열려있다. 전혀 "안전하지 않은 자리"에서 혼자만의 힘으로 그 모든 것을 다 헤쳐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 비법은 무엇일까? 바로 마음을 비우는 것이다. 모든 것에서 내 마음을 놓고 아무 것도 없는 나를 만드는 것이다.

 

보통의 생활인으로서 성실하게 살아가는 자세를 갖춰야 하며, 동시에 수련 중에는 내 마음에 어떤 욕망도 없는 상태를 만드는 것. 얼핏 나의 발전과 상충될 것 같은 이런 상태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며 어떻게 만드는 것일까?

우리가 생활인으로서 살아가려면 비우지 않아야 할 것이 너무나 많다. 사실상 그것을 비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내 마음의 자리를 비우지 않으면 빈자리를 만들 수 없으므로 내가 깨달음을 받아들일 자리가 없다. 비운만큼 채워지는 것이 우주의 이치이다. 조금 비우면 조금 채워지고, 다 비우면 다 채워진다. 하지만 실제 생활인으로서 비울 수 없는 이유와 수행에서 비움이 요구되는 조건 사이에 갈등의 요소가 자리한다. 그럼에도 비워야 한다는 전제는 변치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 조건을 충족시켜 생활은 지혜롭게 하면서도 마음은 비울 수 있을까? 여기에서 내가 개발하고 실천한 "다원집중"이 요구된다.

생활인으로서 모든 가족이 건강을 유지하고 의식주를 해결하며 사회생활을 할 만큼 역량을 발휘해야 한다. 그것을 유지하면서 비움을 실천하는 것은 간극이 적지 않다. 여기에 지혜가 필요하다. 나는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하였을까?

 

직장 생활과 대학원 공부, 개인적인 목표를 달성하면서 동시에 수련까지도 해나갔던 나는 당시 그 모든 것을 해내기 위해 일과의 우선 순위를 정하고 그것을 실행에 옮겼다. 상황에 따라 우선 순위에 변화는 있었지만 내 마음의 흔들림을 줄이기 위해 소소한 것들을 먼저 정리해나갔다. 하지 않아도 될 행동을 줄이고 그런 시간들을 호흡으로 채워나갔다. 호흡을 하면서 내 마음을 비우는 훈련을 해나갔는데 그 핵심이 모든 것에서 불필요한 관심을 버리는 것이었다.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것들로부터 내 마음을 비워 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호흡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외부적인 것에 불과하였다. 내 주변에서 나에게 흔들림을 가져올 만한 것들을 비웠지만 나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흔들림들은 그대로였다. 이러한 것들은 부딪쳐서 해결하는 것이 중요했다. 호흡을 하면서 떠오르는 많은 잡념들을 모두 단전으로 인도하고 다시 무념을 청하였다.

하지만 아무리 해도 계속되는 잡념들이 나를 괴롭혔고 몇날 며칠 비우려 노력을 해도 비워지지 않는 것들이 있었다. 그러나 잡념이란 나 스스로를 정리할 수 있게 나타나 준 "고마운 것들"이다. 잡념은 무엇을 비워야 할지 알려주는 나의 것들로 그것을 비울 수 있도록 알려주는 신호다. 이런 신호가 한 점도 떠오르지 않고 사라지면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것을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평범한 방식으로는 어렵다.

지금까지 내가 하던 방식으로는 어려울 것 같았다. 방법을 바꿨다. 잡념으로부터의 도망이 한계가 있음을 체감한 후, 어느 날부터 호흡 하는 내내 잡념만 생각하기로 작정을 하고 계속 잡념을 떠올렸다. 억지로 이 생각 저 생각하지 않아도 수많은 잡념들이 산재해 있었다. 우리가 논의 한가운데 웅덩이를 파려고 하면 그곳으로 물이 계속 흘러들어와서 그 웅덩이를 비워놓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 논의 모든 물이 다 없어져야 논 한가운데 웅덩이가 비워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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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잡념을 없애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었다
. 어느 정도의 시간은 어쩔 수 없기에 담담하게 매일 잡념수련 하기로 했다. 그렇게 며칠을 하자 잡념들이 떠올랐다 사라지기를 반복하였고 이런 시간들이 계속되자 점차 어떤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 시간들이 드문드문 생기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그 조차 일시적일 뿐 다시 새로운 잡념들이 떠오르곤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들이 이어지며 드디어 내 마음에 어떤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 시간들이 점점 길어지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몆초에서 몇십초간 무념 상태가 지속되더나 점차 1, 2, 5분 점점 무념의 상태가 지속되는 시간이 길어졌다. 이 때부터는 잡념을 밀어내기 시작하였다.

어떤 생각이 올라오면 그 생각을 수첩에 메모하고 잊어버리는 방식으로 잡념을
돌파해나갔다. 그렇게 무념상태를 하루 이틀 유지해나갔다. 수련을 끝내고 잡념의 원인이 되었던 것들을 수첩에 하나 하나 정리해 다시는 잡념이 생기지 않도록 환경을 만들어 나갔다항상 새로운 잡념 꺼리들이 계속 생겨났으므로 잡념의 대상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불가능하였지만 어느 정도는 무념이 유지되고 있었으므로 수련 시간 동안 무념 시간이 점점 길어지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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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념의 사이 사이 무념의 시간들이 자리하고 있고 그 시간들에 힘이 생기면서 잡념을 밀어내고 있었다. 이런 연습을 해나가면서 무념의 시간이 5, 6, 7, 10, 점점 길어져서 나중에는 30, 40, 1시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렇게 마음이 비워지는 시간 늘리기가 가능해지던 중 어느 날 호흡을 시작하고 수련을 마칠 때까지 어떤 생각도 나지 않는 완벽한 무념 경험하게 되는 날이 왔다.


완벽한 무념의 시간이 길어지고 아무리 잡념을 떠올리려고 해도 잡념이 떠오르지 않는 시간이 드디어 하루 종일 이어졌다. 머릿 속이 완전히 비워진 듯한 상태에서 내 몸이 공중으로 솟구쳐 올라가는 느낌이 왔다. 유체이탈의 상태. 공중에 떠서 사방을 돌아봐도 완벽한 검은색으로 채워진 공간의 공중에 내가 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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